40. 대갈(大喝) 김현대(金鉉待)

기부영(奇浮永)은 하나하나 노인과의 인연을 짚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기는 이 노인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도깨비를 따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농사도 때가 있는데 때를 놓치면 곤란한 것이다. 그런데 아무 대책 없이 무작정 이 노인네만을 쫓아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노인네를 정체를 알고 말 것이다. 이렇게 결심을 했다.

“야! 이놈아! 잠 좀 자자! 요즘 세상에 도깨비는 무슨 도깨비? 하긴 내가 도깨비 김 씨 이긴 하다. 미친놈! 궁금하면 진작 물어볼 것이지? 불알 찬 사내 녀석이 계집애처럼 귀신 씨 나락 까먹듯 구 시렁 거리냐! 그래! 이놈아! 내가 대갈(大喝) 김현대(金鉉待)이다. 알았냐! 알았으면 이제 잠 좀 자자!”

노인은 잠꼬대인지 다 알아들었는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또 다시 코를 골았다. 기부영은 속으로 뜨끔하였다. 도대체 이 노인네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인지? 어떻게 자신이 혼자 생각한 것 까지도 알아맞힌단 말인가?

“그런데 대갈(大喝) 김현대(金鉉待)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대갈, 대가리, 대가리라? 설마? 그 대갈(大喝) 김현대(金鉉待) 박사님이시란 말인가? 설마? 저 노인이?”

그는 번개에 얻어맞은 것처럼 어찔하였지만 다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노트북 가방을 떨리는 손으로 열었다. 다시 검색을 해보려는 것이었다. 노트북을 열고 사이트를 찾아 “대갈 김현대”라고 치고 커서를 눌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차마 가슴이 떨려 바라 볼 수가 없었다.

대갈(大喝) 김현대(金鉉待) 인문학자. 철학자.

출생:1929년 6월6일생(경상북도 영해)

가족:1남2녀

학력: 서울대학교, 미국하버드대, 프랑스 그랑제콜 대.

경력: 세계10대석학

특기사항: 살아있는 기인(奇人)으로 모든 영역에서 해박한 학식과 언변으로 큰소리를 쳐서 대갈(大喝)이란 별명을 얻음. 갑작스레 모든 활동을 중단 잠적. 그의 행방을 알 수 없음.

“ 정말? 이 영감님이 그 무소불이 세계대석학 ”대갈 김현대“ 박사님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 분명 인품이 있고 넉넉한 풍채이셨는데, 어찌 저런 말라깽이 가 되셨단 말인가? 모습은 비슷한데 전혀 딴 사람 같은 이, 그리고 그런 양반이 어떻게 이런 걸인이 되셨단 말인가?  이거야 정말 쇼킹한 일이야!”

기부영은 다시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아주 어린아이처럼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그런데 기부영은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왜? 왜? 소리가 가득 들어서 어질어질하였다. 그러는 동안 차는 서산 터미널에 도착하여서 운산 행 시내버스를 타고 운산면 승강장에 내려 다시  용현계곡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기부영은 영감님이 대갈 김현대 박사라는 것을 몰랐을 때는 자기 마음대로 투덜대기도 하고 함부로 대했는데 자기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존경하는 박사님이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저 망막하기만 하였다. 버스에서 내린곳은 댐을 막은 저수지이었다. 걸어가면서 돌아보니  댐 위로 옛 도로 있었는데, 옛날에는 그 쪽 길로 다닌 것 같았다. 지금은  새 도로와 새 터널이 뚫려 있어서 그길로 다니고 있었다.

댐 근처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댐 아래로 오붓한 오솔길이 보이는 것이 젊은 연인들이 테이트 하기 좋은 곳 같았다. 계곡 입구에서 보이던 네모난 석불이 하나 우뚝 장승처럼 서 있었는데 안내판에 "강댕이 미륵불"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하하하 바보장승 이고만! 이놈아! 이 얼굴 좀 봐라! 작은 눈. 뭉텅한 코.

두툼한 입술. 요즈음 보기 드문 얼굴이지? 이렇게 우직한 얼굴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니 정말 충성스런 사람이지? 이 불상은 "강댕이"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 지점에 위치해 있던 불상이다. 고려 말인가? 조선조 초기에 만들어 세웠다고 하기도 하고, 서해로 통하는 위치이니  중국 사신들이 이 장승을 보고 길잡이를 했다고도 한다. 또 보원사를 수호하는 천하 대장군 이라하기도 하지? 그런데  댐 때문에 “강댕이” 마을이 수몰되어서 이 용현계곡 입구로 옮겨 온 것이다. 이제 댐이다 뭐다 해서 이런 명물도 마을에서 사라지는 형편이니, 휴우 ~ “

김현대 박사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여전히 놈 자를 부쳐가며 지나칠 정도로 너스레를 떠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주니 오히려 어색함이 사라지고 자연스러워 졌다.

“저 박사님! 이제 그 놈 자는 안하시면 안 됩니까? 저도 이제 나이가 오십 줄이 넘었는데.....  ”

기부영이 용기를 내서 퉁명스럽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김현대 박사가 씩 웃으며 주먹으로 기부영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 야! 인석아! 네놈도 무슨 박사, 무슨 명예, 이런 것을 좋아하는 속물이더냐! 그런 형식 집어치우고 그냥 영감이라고 불러 이놈아! 그런것은 예전에 모두 던져 버렸다.  ”

그러면서 씽씽 앞장서서 계곡을 올라갔다. 계곡은 그리 크지 안했고 물도 맑고 비옥한 참으로 아름다운 계곡이었다. 나무들도 다양한 종류가 있었고, 맑고 따뜻한 느낌 의 물에 여러 가지 물고기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 계곡 위에 살짝 걸쳐진 다리를 지나쳐서 안쪽으로 들어가 조금 더 올라가니 계단이 나타났는데 계단이 까마득해 보였다.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마음을 정결이 하여야 한다. 삼보 일 배를 하는 심정으로 이제까지 지은 죄를 하나하나 덜어내는 심정으로 올라오너라! 장차오실 미륵님의 원형을 뵈러가는 길이니 마음을 정갈하게 해라!”

그렇게 혼자 말처럼 하고 김현대 박사는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기 시작하였다. 막상 계단은 보는 것보다 가파르지 안했고 오를 만 하였다. 언제 걸어도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은 아름다웠다. 특히 절에 있는 계단은 그런 느낌이 더 들었다. 정말 세속을 떨쳐버리는 마음가짐을 다짐해 주는 것 같기도 하였다. 기부영은 이제야 제대로 정신이 바로 드는 것 같았다.

                                마고여신의나라(麻姑女神國)